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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퀴어문화축제를 둘러싼 논란: ‘지지’의 이면에 가려진 권력 관계

최종 수정일: 2022년 9월 8일

미국 외교단과 초국가적 제약사인 길리어드사의 축제 참여는 국제정치와 자본이 인권 문제와 결부된 현실을 조명했다.

  • 원문 작성: 에스텔

  • 원문에 대한 검토와 수정: 레이, 미겔

  • 번역: 루비(베트남어), 미겔(스페인어, 카탈루냐어), 동치(영어), 츠키(일본어), 사락(중국어), 미아(프랑스어)


3년 만에 예년과 같이 대대적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한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성황리에 종료되습니다. 하지만 축제를 전후 여러 문제 제기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특히 미국 대사관과 초국가적 제약사인 ‘길리어드 코리아 사이언스’가 축제에 참여한 것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미국 대사관과 길리어드사는 공개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고 표명하며 정부에 의한 제도적인 성소수자 차별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이와 동시에 이들과 성소수자 사이 존재하는 권력 관계가 정말로 성소수자 인권에 우호적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한국 밖에서 유사한 논의를 접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스페인에서는 2022년 마드리드 프라이드의 후원사로 에어유로파(Air Europa)라는 항공사가 참여하자, 키프키프(Kifkif)와 같은 성소수자 난민 지원 단체는 성소수자 난민의 강제 본국 송환에 협조하고 있는 에어유로파가 정말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지에 의문을 표하며 마드리드 프라이드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또 미국에서는 월마트, 맥도날드, 아마존 등 유수의 기업들이 성소수자 자긍심 마케팅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성소수자 의정활동을 하는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모두 외교적 역학관계와 자본이라는 요소가 성소수자 인권과 결부된 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통해 한국의 사례를 짚어보겠습니다.

미국 대사관과 대사의 행보

우선 필립 골드버그 신임 주한 미국대사의 축제 참여가 수면 위로 부상했습니다. 사실 주한 미국대사와 대사관의 퀴어문화축제 참여는 늘 문제 제기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중동중남미, 관타나모 등에서 국익을 이유로 여러 반인권적인 행보를 보여온 미국이 퀴어문화축제 참여를 통해 인권의 옹호자를 자임하는 모습, 즉 ‘핑크워싱’이 부적절하다는 것이 주된 논지였습니다.


한국의 성소수자 행사도 해마다 규모가 확대되고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성소수자 운동은 국제정치 및 자본과 더욱 많은 갈등을 겪을 것입니다.

2015년 이래로 주한 미국 대사는 대사관과 함께 꾸준히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왔지만, 이번에는 대사가 성소수자 당사자일 것이라는 혐오세력의 근거 없는 추측과 그가 축제에서 ‘연설’을 한다는 언론 보도가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논란이 일자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의 한채윤 이사는 ‘연설’은 단지 기자의 표현이고 예년과 같이 각국 대사들이 1분 정도씩 발언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무대에서 발언하고 있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
서울퀴어문화축제 무대에서 발언하고 있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

6월에 있었던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셔먼 부장관은 방한 중 미국 대사관저에서 ‘국내 성소수자 인권 및 차별금지 보호’라는 주제의 간담회를 열고 트랜스젠더 방송인 하리수 씨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초청했습니다. 군인권센터는 한국의 민간 인권 단체로, 군 복무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에서 성소수자 군인의 인권을 조명하는 일도 맡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성조기와 나란히 무지개 깃발을 게양하는 행사가 있었고 차후 제시카 스턴 미 국무부 성소수자 인권특사의 방한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셔먼 부장관의 간담회 이후 한국의 규모 있는 성소수자 단체 중 하나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남웅 활동가는 한국 언론인 경향신문에 게재한 기고문을 통해 비판적인 의견을 남겼습니다. 남웅 활동가는 “미국 정부가 인권을 대변할 수 있는가는 계속해서 물을 수밖에 없다”라며 각국이 외교 무대에서 국제정치와 안보를 빌미로 평등과 인권을 소비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인권운동의 역할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인권 옹호라는 말 속에서 정말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경계하는 것이라고 전했는데, 골드버그 대사의 행보에 대해서도 시사점이 있는 주장입니다.

길리어드사와 HIV/AIDS 의약품

또 다른 논란은 초국가적 거대 제약회사인 길리어드사의 축제 참여에 관한 것입니다. 길리어드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예방 요법인 ‘프렙’(PrEP)에 쓰이는 ‘트루바다’ 등, HIV/AIDS 관련 약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길리어드는 이번 축제에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여 부스와 행진 차량을 배정받아 운영했습니다.


축제 장소인 서울시청광장에서 길리어드 직원들이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가 HIV 감염인을 응원합니다”라고 쓰여있는 현수막과 “살아가고, 사랑하고, 해방하라”’(LIVE LOVE LIBERATE)라고 써있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
축제 장소인 서울시청광장에서 길리어드 직원들이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가 HIV 감염인을 응원합니다”라고 쓰여있는 현수막과 “살아가고, 사랑하고, 해방하라”’(LIVE LOVE LIBERATE)라고 써있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남웅 활동가가 “건강과 존엄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이윤보다 생명, 이윤보다 건강, 길리어드는 모두를 위한 의약품 접근권 개선하라!”라고 쓰여있는 피켓을 들고 팔을 흔들고 있다. 피켓에는 성명 링크가 큐알코드로 붙어있고 레드리본과 손, 알약 그림이 있다.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남웅 활동가가 “건강과 존엄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이윤보다 생명, 이윤보다 건강, 길리어드는 모두를 위한 의약품 접근권 개선하라!”라고 쓰여있는 피켓을 들고 팔을 흔들고 있다. 피켓에는 성명 링크가 큐알코드로 붙어있고 레드리본과 손, 알약 그림이 있다.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

이에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소속 단체 중 12개 단체는 공동성명을 통해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행진 차량 중 하나를 길리어드가 점하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길리어드가 HIV 인식개선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약값 인하 없이 특허를 연장하는 상황에서 인식개선은 결국 수익 증대에 동원되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퍼레이드를 길리어드 차량이 이끈다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본행사 당일 현장에서는 일부 활동가들과 부스에서 초국적 제약회사에 관한 문제점을 알리는 피켓, 현수막, 포스터 등을 전시하며 이 문제에 대한 항의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성소수자 행사도 해마다 규모가 확대되고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성소수자 운동은 국제정치 및 자본과 더욱 많은 갈등을 겪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가 한국의 성소수자 공동체 내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는 시점입니다.



 
  • 원문 작성: 에스텔

  • 원문에 대한 검토와 수정: 레이, 미겔

  • 번역: 루비(베트남어), 미겔(스페인어, 카탈루냐어), 동치(영어), 츠키(일본어), 사락(중국어), 미아(프랑스어)

참고자료 (한국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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