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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권리를 다룬 지역 인권 조례: 그 실효성과 폐지 시도

최종 수정일: 2023년 11월 20일

전국 각지에서 제정된 여러 인권조례와 학생인권조례는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기반한 차별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지역민의 삶에 가장 밀착한 법적 장치라는 의의도 있지만, 조례의 가치를 실현할 제도적 장치나 인력, 예산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 실효성이 비판받기도 했다. 또 성소수자를 명시한 문구가 혐오세력의 표적이 되기 일쑤였는데, 충청남도와 서울에서 마주하고 있는 인권 조례 폐지의 위험이 그 사례이다.

  • 원문 작성: 미겔

  • 원문 검토: 레이

  • 번역: 미겔(스페인어), Juyeon(영어), 보꾸(일본어), Van(중국어), 미겔(카탈루냐어), 미아(프랑스어)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수단이라면 법과 제도가 있을 것입니다. 법과 제도는 보장받지 못했던 권리를 보장하고 차별과 혐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여러 제도 중에서도 조례는 주민들의 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차별금지법과 같은 국가 단위의 법령을 제정하는 것만큼이나 전국 각지에서 성소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요, 인권조례와 학생인권조례가 그 예시입니다. 예컨대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학생 인권운동 진영을 포함한 한국의 인권 운동은 각종 체벌, 두발 자유 침해, 0교시 등 여러 폭력과 차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제정되었습니다. 이 조례에는 특히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근거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도 명시하고 있어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여러 지자체에서는 이런 인권조례가 폐지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조례 제정 초기부터 ‘성적지향, 성정체성’ 문구 삽입을 극렬히 반대해 온 혐오 세력이 각지에서 보수 정권의 집권에 힘입어 조례 폐지를 주도하고 있는데요. 조례 폐지를 둘러싼 논쟁을 성소수자 혐오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충남

충남에서는 지난 2012년 처음으로 인권조례가 제정되었습니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전국 지자체(지방정부)에 자체적으로 인권조례를 제정하도록 권고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방 인권조례는 각 지방정부가 주민의 인권을 보장할 책무를 지고 있음을 명시함으로써, 지방정부가 지역에서 발생하는 인권문제에 신속히 개입하고 인권에 기반한 행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뒤이어 2020년에는 충남 학생인권 조례도 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조례 모두 현재 폐지의 위험을 맞고 있습니다.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보수단체는 인권조례가 국민 다수의 권리를 침해하고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좌파적 인권 개념’을 강요해 ‘올바른 학생 지도’를 방해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올해 3월 도의회에 주민 서명을 모아 조례의 폐지를 청구했습니다. 도의회는 유효한 서명이 충분히 모였다고 판단해 조례 폐지를 임시회에 부칠 예정이었습니다. 다만 위기충남공동행동 등 시민단체가 법원에 해당 조례 폐지 시도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고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9월 대전지방법원이 이를 인용함에 따라 당장은 조례가 폐지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례 폐지를 둘러싼 찬반 측이 재판에서 정당성을 다투는 중에도, 충남도의회는 11월에 회의를 열고 조례 폐지를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충남학생인권조례제정 홍보 포스터로, “경기, 광주 서울, 전북에 이어 충남이 만듭니다”, “학생 인권이 존중되는 학교를 만들어 주세요!” 따위의 문구가 쓰여 있다. 다양한 복장을 입은 학생 여러 명이 학교를 배경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그림이 있다. (출처: 굿모닝충청)
충남학생인권조례제정 홍보 포스터로, “경기, 광주 서울, 전북에 이어 충남이 만듭니다”, “학생 인권이 존중되는 학교를 만들어 주세요!” 따위의 문구가 쓰여 있다. 다양한 복장을 입은 학생 여러 명이 학교를 배경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그림이 있다. (출처: 굿모닝충청)

사실 충남 인권조례는 2018년 이미 한 차례 폐지되었다가 다시 제정된 바 있습니다. 당시 도의회는 동성애와 이슬람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조례를 폐지했는데, 같은 해 선거로 도의회 다수당이 바뀌면서 조례가 다시 제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충남인권교육활동가 모임 부뜰의 이진숙 대표가 오마이뉴스 기고문에서 밝힌 것처럼 당시 충남 정치권은 “조례를 '제정'하는 것만 관심이 있었을 뿐, 어떤 조례여야 하는지나 조례의 실효성엔 무관심”했습니다. 조례 제정을 통해 충남도 내에 인권기구나 보호관이 설치돼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시정권고를 내리기는 했지만, 현실의 인권침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실효성과 강제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권조례가 다시 폐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실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조례의 내용이 지역민의 삶에 뿌리내려 “인권의 가치와 원칙이 행정과 주민에게 녹아들”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인권조례는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지요. 결국 조례는 새로 제정되었지만 “인권행정 전담부서도 없이” 제대로 효력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이진숙 대표는 충남인권센터가 독립성을 확보하지도 못했고 공무원 인권교육은 형식적인 교육에 그친 데다가 인권기본계획은 실현되지 않은 계획에만 머물렀다고 지적했습니다.


학생 인권조례도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 등 연대체의 노력으로 2020년 제정되었지만, 비슷한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사립학교에서는 수시로 학생인권조례의 조항이 무시당하고 학생 인권교육도 알맹이 없이 진행됐는데, 학생들조차 인권조례의 존재를 아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특히 올해 충남 도서관에서 혐오성 민원으로 인해 성교육, 성평등을 주제로 한 아동 도서를 폐기하게 된 사건을 생각할 때 이러한 현실은 더욱 우려스럽습니다.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5월부터 보수성향 학부모단체들이 충남 일대의 공공도서관에 민원을 제기하며 다양성, 성인지 감수성, 성소수자 등을 다루는 책을 폐기해달라고 지속 요청했습니다. 이로 인해 여러 도서관에서 책이 폐기되거나 서적의 열람이 제한되기도 했고, 김태흠 충남지사 등에 이에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중에 유엔인권위는 지난 1월, 서울과 충남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며 조례가 일상의 최전선에서 학생들을 보호하는 장치임을 강조했습니다. 유엔인권위는 “인권기본조례가 폐지되면 충남도 인권위원회와 인권센터,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인권보호관 등은 더 이상 법적으로 운영할 근거가 없어진다”라고 지적하면서, 부족하지만 조례를 기반으로 이미 여러 장치가 작동하고 있기에 조례의 폐지는 지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조치임을 보였습니다.


헌법이나 법령 등 상위 법률에 대해 보완적으로 작용해 주민들의 삶에 밀착하는 제도라는 특징도 있지만, 조례는 곧 인권 제도화의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서울에서도 비슷한 조례 폐지 움직임이 있습니다. 서울은 2011년 경기도, 광주광역시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는데 특히 최초로 주민발의 형식으로 조례를 제정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김연주와 나영정이 2013년에 ‘기억과 전망’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제정되기는 했지만 조례 적용의 당사자인 학생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조례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서울에서는 주민들이 조례 제정에 적극 참여한 것입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학생인권 단체는 물론이고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나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등 성소수자 단체도 적극 참여해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관한 조항은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 이 조항을 제외하고 조례를 통과시키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조례는 무사히 제정되어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막고 복장, 집회, 섹슈얼리티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인권조례는 전국 여러 학생인권조례 중 최초로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또 2017년에는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끊임없는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3년 2월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관한 주민 청구를 받아들이며 학생인권조례 개악의 신호탄을 쏘았습니다. 서울시의회의 개정안에 따르면, 차별금지 사유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삭제하고 ‘양심과 종교의 자유’ 및 ‘사생활의 자유’ 항목을 통째로 삭제하게 됩니다. 의회 내 알력으로 인해 잠시 멈췄지만, 폐지의 위험은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조례의 의미

이진숙 대표가 지적했듯이 지금까지 인권 조례가 형식적인 제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성소수자 인권을 비롯한 소수자 인권 보호의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또 『퀴어 아포칼립스: 사랑과 혐오의 정치학』에 따르면 2020년 3월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조례가 제정 무산, 개악, 폐지되는 사례가 124건에 이르는 등, 조례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흔들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공현 활동가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도 지적하듯,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 시행에 의지를 갖지 않으면, 심지어 학생인권을 축소시킬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면 학교 현장에선 학생인권조례를 너무나 쉽게 무시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학생인권조례는 강제성이 매우 약하고 “학생인권조례에 똑똑히 나와 있는 학생의 권리를 학교가 침해하더라도 바로 처벌받거나 강제적 시정 조치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시의 조례의 의미는 여전히 강조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헌법이나 법령 등 상위 법률에 대해 보완적으로 작용해 주민들의 삶에 밀착하는 제도라는 특징도 있지만, 김올튼이 2023년 ‘여성학논집’ 논문에서 지적하듯이 조례가 곧 인권 제도화의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조례는 인권 보호에 관한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어떻게 법과 제도를 구체화하고 실현할 것인지 다루게 되는 계기라는 것입니다.



 
  • 원문 작성: 미겔

  • 원문 검토: 레이

  • 번역: 미겔(스페인어), Juyeon(영어), 보꾸(일본어), Van(중국어), 미겔(카탈루냐어), 미아(프랑스어)


참고자료 (한국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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