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다양인은 ‘사회성이 떨어지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편견 속에서 기성사회의 차별을 받고 있다. 최근 정체성의 교차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나는 한국에서 신경다양인이면서 성소수자성을 가진 사람에게 주목했다. 이들은 교차하는 소수자성 속에서 가시화되지 못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원문 검토: 미겔, 희중
번역: 희중(스페인어), 피웊(영어), 가리(일본어), 사락(중국어), 우산(인도네시아어), 미겔(카탈루냐어), 비안네(프랑스어)
이번 글은 LGBT News Korea의 초대를 받아 이아나(Ana Lee) 님이 기고해 주셨습니다. 이아나 님은 ‘세바다’의 회원으로 신경다양성과 성소수자성을 비롯한 교차 정체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는 다른 교차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늘고 있고, 대체적으로 이들을 수용하려는 분위기입니다. 그런 ‘다른 교차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는 대표적으로 인종 및 문화 차이를 지닌 사람이나 여러 유형의 장애인이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후자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시각장애나 청각장애, 지체장애와 같이 ‘신체적 장애’를 가졌으면서 성소수자이기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정신적 장애’를 가졌으면서 동시에 성소수자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알려지지도 않았고, 당사자들이 알리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는 이들 정신적 장애인에 대해서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ADHD를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책 출간도 많이 되고 있습니다. 이때 ADHD와 더불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신경다양인’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물론 신경다양인이 저 두 가지 진단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신경다양인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들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지금부터 알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신경다양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신경다양인은 신경다양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신경다양성은 무엇일까? 의미 그대로 해석하자면 신경구조가 다른 보편적인 사람들보다 다양하여 자폐나 ADHD를 비롯한 신경다양성 진단명이 발생하는 사람들입니다. 신경다양성 운동은 신경다양인들이 (또는 신경다양성을 지지하는 신경전형인들이 함께) 신경다양성에 대해 알리고 신경다양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운동입니다. 신경다양성은 그 개념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국내외 할 것 없이 역사가 짧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신경다양성 운동 단체로는 ‘세바다’가 있으며, 이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습니다. ‘세바다’는 그간 다른 단체 및 연대체와 워크샵을 열거나,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민간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작년에 이어 올해 2월에는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대외적인 활동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미술모임이나 자조모임도 진행했습니다.
그동안 성소수자 운동 속에서 신경다양인은 많은 경우 배제되어 왔습니다. 사실 성소수자 운동 외의 다른 운동권에서도 배제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신경다양인은 대체로 어딘가 이상하거나 부족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말로만 치부되어 왔습니다.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실제로 신경다양인들이 지닌 특성 중 하나이지만, 그것을 인간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저 ‘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고 사회로부터 배제해왔습니다. 성소수자 운동에서도 신경다양인을 배제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신경다양인을 다양성의 관점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 운동에서 비성소수자(비퀴어)에게 퀴어한 자신을 드러내 보일 때 일면 퀴어함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비성소수자 사회의 정상성 개념을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과정에서 ‘이상함’을 가진 신경다양인 개인은 성소수자 운동권에서도 어울리고 싶지 않은 집단으로 인식돼 배제되는 것이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다양한 사회적 운동 속에서 신경다양인을 조명하기 위한 시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이 바로 그 현장입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교차와 연대’였고, 해외 사례를 담은 해외 발표자도 많았지만 국내의 사례를 연구한 국내 발표자도 돋보였습니다. 나도 이 행사에서 ‘신경다양성과 성(Neurodiversity and Sexuality)’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대한민국 거주 신경다양인의 성적 소수자성 현황’이라는 제목으로 신경다양인이면서 성소수자인 사람들이 얼마나 있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개괄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정체성의 교차에 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신경다양성’과 ‘성적 소수자성’이라는 두 가지 소수자성을 한데 다룬 연구를 준비했습니다. 여러 신경다양인과 성소수자 당사자를 모집해 신경다양성, 성별, 성적지향 등에 대한 설문을 실시했고, 많은 신경다양인들로부터 교차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을 들었습니다.
신경다양성과 성소수자성이라는 교차 정체성을 간결하게나마 조사하면서 당사자들의 다양한 면면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당초 예상과 달리, 교차 정체성으로 인한 어려움이 없었다는 응답도 있었고 정체화를 했더라도 삶에 큰 변화가 딱히 없었다는 응답도 있었습니다. 교차 정체성을 가진 당사자들이 소수집단이지만 그 내면은 마냥 일률적인 집단이 아닌, 다양성 속에 다양성을 가진 집단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많은 응답자들이 정체화를 통해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되거나 자기결정권 등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직장이나 학교, 가족에서 이해를 받았다고 응답했습니다. 아직 소수자성에 적대적인 한국 사회이지만,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지탱하거나 주변으로부터 지지를 받음으로써 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상상하고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얻었던 것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연구를 기획하고 발표함으로써 교차적 연구를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교차적 연구가 시행되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다양한 ‘이상한 사람들’도 함께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신경다양인 당사자 혹은 지지자라면 아래 링크를 통해 신경다양성 운동 단체 ‘세바다’에 연락해보세요
원문 작성: 이아나
원문 검토: 미겔, 희중
번역: 희중(스페인어), 피웊(영어), 가리(일본어), 사락(중국어), 우산(인도네시아어), 미겔(카탈루냐어), 비안네(프랑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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