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학교에서 다시 지워진 성소수자: 교육부는 12년 동안 성소수자를 가리고 싶어한다

지난 11월 9일, 한국 교육부는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학교 현장에서의 가시화와 일상화가 성소수자 학생들의 인권 보호에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교육부는 학생과 교사들이 경험하고 있는 차별과 혐오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 원문 작성: 미겔

  • 원문 검토: 권태, 보꾸, 희중

  • 번역: 희중(스페인어), 동치(영어), 가리(일본어), 사락(중국어), 미겔(카탈루냐어), 비안네(프랑스어)

한국에서는 6년의 초등학교 교육과 3년의 중학교 교육이 의무 교육이고, 많은 학생들이 3년제 고등학교에도 진학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성인이 되기 전 12년이라는 시간을 학교라는 닫힌 공동체에서 보냅니다. 그런데 한국 교육부는 지난 11월 9일, 이 12년의 시간에서 ‘성소수자’를 삭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청소년들의 정체성 혼란을 우려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내용은 ‘2022년 개정 교육과정’입니다. 이 개정안이 최종 확정이 된다면 2024년부터 초등학교, 25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수업 지침 및 교과서 집필 기준으로 사용됩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회·도덕·보건 교과에서 ‘성소수자’와 ‘성평등’ 용어를 삭제하고 이를 ‘성별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 ‘성에 대한 편견’, ‘성차별의 윤리적 문제’ 등 에두른 표현으로 대체하게 됩니다.


교육부는 이 결정이 의도적인 성소수자 지우기라는 점을 시인했습니다. 장홍재 교육부 관계자는 성소수자를 교육과정에 명시하면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청소년들의 정체성 혼란”이 발생하고 “제3의 성을 조장”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지난 2015년 국가 수준의 성교육 표준안을 작성하면서 성소수자를 누락한 전력이 있는데, 국가는 또 한 번의 퇴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배포한 카드 뉴스의 일부. 도덕 과목의 목표 중 하나로 ‘자신 및 타인, 자연과 도덕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관계 중심 윤리의식 강화’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성소수자 학생이 자신을 이해할 기회도, 이미 우리의 이웃이자 동료인 성소수자 시민과 관계를 맺을 기회도 보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교육부)
교육부가 배포한 카드 뉴스의 일부. 도덕 과목의 목표 중 하나로 ‘자신 및 타인, 자연과 도덕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관계 중심 윤리의식 강화’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성소수자 학생이 자신을 이해할 기회도, 이미 우리의 이웃이자 동료인 성소수자 시민과 관계를 맺을 기회도 보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교육부)

학교 현장에서 성소수자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 교육과정은 2015년 개정된 것입니다. 지금의 학교에서는 성소수자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한 연구에서 고등학교에서 사용되는 사회·문화 교과서 5종을 분석한 결과, 사회적 소수자 단원에서 성소수자를 서술한 교과서는 한 권도 없었습니다(임정수·박형준·모경환, 2022). 또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이라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성소수자를 간단히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이 교과서는 수업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형편입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인 띵동과 공동법률사무소 이채가 발표한 2022년 보고서도 부실한 성소수자 인권 교육 현황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육 관련 법률 중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은 없고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은 2012년부터 성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또 예비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성인지 교육에서도 성소수자 관련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 전북, 충남 등 일부 자치단체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성소수자 학생의 권리 보호만 명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핑계 뒤에 숨어서 정확한 단어의 사용조차 회피하는 정부의 태도는 오히려 혐오를 방관하고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따름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발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는 학교 현장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사에 응한 중·고등학교 교사 100명 중 79%는 성소수자 인권 관련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또 교사 전원은 자신이 재직 중인 학교에 성소수자 차별 금지 및 인권 보호 정책이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생을 보호하는 장치가 되어야

교육부의 말처럼 청소년기는 성 정체성을 비롯한 여러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정체성과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하고, 따라서 성소수자가 교육과정에 명시되는 것은 오히려 중요한 일입니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이 교육의 역할을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과 (…)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평등하게 관계 맺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라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무지개행동 이호림 활동가(가운데)가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교육과정 규탄 시위에서 ‘차별 혐오 교육 조장 말라! 다양성 존중 교육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출처: 무지개행동 페이스북)
무지개행동 이호림 활동가(가운데)가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교육과정 규탄 시위에서 ‘차별 혐오 교육 조장 말라! 다양성 존중 교육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출처: 무지개행동 페이스북)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성소수자 학생 200명 중 92%는 차별과 괴롭힘이 두려워 정체성을 숨긴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괴롭힘을 당해도 교사와 상담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87.5%에 육박했는데, 대부분은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지 않아서’, ‘나를 고치려 들 것 같아서’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성소수자 학생들의 긍정적인 학창시절을 위해서는 이들을 지지해줄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교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뚜렷한 교육과정과 학교 정책이 필수적입니다. 띵동과 이채의 2022년 조사에 응한 한 교사는 교육과정에 없는 성소수자 인권 수업을 교사 재량으로 진행하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또, 자율적으로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실시한 교사들이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혐오 공세에 맞닥뜨리기도 했습니다. 한 사례에서는 혐오세력이 성소수자 관련 교육을 시행한 학교에 ‘동성애 조장’을 이유로 다수의 민원 전화를 넣거나 학교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교사를 지망하는 성소수자들도 같은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교사를 꿈꾸는 여성 성소수자 3명은 한 인터뷰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심리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교사를 꿈꾸고 있지만 교육과정에 성소수자가 명시되지 않은 것이 걸림돌이라고 말했습니다(신경희, 2019). 일례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가르치는 시간에 교과서에 없는 동성 부부를 가르치려고 해도, 보수적인 학교 현장의 분위기 때문에 반대에 부딪히고 더 나아가 교사의 위치까지 위협받는다는 것입니다.


“가시화와 일상화는 권리 증진을 위한 최선의 방법”

11월 29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학생 4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약 78%가 성소수자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학생들도 이미 우리 사회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합니다. 이에 한 연구는 교과서에 성소수자가 등장하지 않는 현실을 문제 삼으며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큰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우려합니다(임정수·박형준·모경환, 2022). 사회적 중요성이 높은 성소수자라는 주제가 교과서에서 누락되면 결과적으로 “사회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한 관점”을 가르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과서에 ‘성소수자’ 한 단어가 들어간다고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핑계 뒤에 숨어서 정확한 단어의 사용조차 회피하는 정부의 태도는 오히려 혐오를 방관하고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따름입니다.


한국 밖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이 학교 안으로 들어온 곳이 이미 많습니다. “가시화와 일상화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증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교실에서 젠더를 다루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라는 한 스페인 선생님의 말은 한국에도 적용되는 말일 것입니다. 아직 교육부의 개정안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새로운 발표를 예의주시하고 전달하겠습니다.



 
  • 원문 작성: 미겔

  • 원문 검토: 권태, 보꾸, 희중

  • 번역: 희중(스페인어), 동치(영어), 가리(일본어), 사락(중국어), 미겔(카탈루냐어), 비안네(프랑스어)


참고자료


閲覧数:49回0件のコメント

Comments


bottom of page